[영화 리뷰] 화제의 영화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호주의 연말 연초는 정말 일 년 중 최고예요. 여름이니까 일단 분위기가 좀 살구요. 직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12월 초부터 둠칫둠칫 노는 분위기예요. 예전에 좀 더 그랬는데 요새는 호주도 경기가 어려워서 연말 분위기가 많이 나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1월까지는 뭔가 좀 설렁설렁 가는 느낌이에요. 12월, 1월에는 집을 렌트하려 해도 마켓에 나온 집이 없을 정도예요. 다들 연말연초에는 휴가도 많이 가고 중요한 일들은 미루는 분위기이랄까요? 자영업자 입장에서 그리 좋은 일은 아니지만 저도 며칠 쉬게 되어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갔어요. 저는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영화는 즐기지 않는 편인데 피가 튀는 잔인한 영화는 좋아해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불만을 대리해소하는 느낌이랄까요?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알고리즘신님이 추천해 준 영화 섭스턴스(서브스턴스, 발음 이상합니다)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어요. 일단 젊은 여자 주인공의 얼굴과 몸매가 너무 예쁘더라구요. 전 여자지만 예쁜 여자 보는 거 좋아해요. 이 분은 유명한 여배우 앤디맥도웰의 딸인, 마가렛 퀄리예요. 30대이던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90년대 청순가련의 대명사였다가 뭔가 탁락한 느낌의 데미무어가 여주인공이요. 60세가 넘으셨다던데 50세로 나오셨더라고요. 근데 얼굴은 성형으로 많이 아쉬워졌지만 아직도 몸매는 예쁘더라고요.
시드니에서 상영하는 곳이 딱 두 군데밖에 없어요. 역시 대중이 좋아할만한 영화는 아닌 거지요.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 영화를 밤에 보게 되면 더 무서울 거 같아 일부러 쨍쨍해가 떠있는 낮에 보러 갔어요. 뉴타운이라는 동네에 있는 덴디 시네마에서 하루 두 번 상영하고 있었어요. 러닝타임이 두 시간 반 정도 되는 상당히 긴 영화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간단한 스낵을 사서 상영관에 입장했어요. 호주에 유명한 극장체인은 호이츠와 이벤트 시네마가 있는데요. 이런 독립극장(Indie Cinema)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있어요. 그리고 나이가 있는 분들은 초콜릿이 덮여진 동그란 아이스크림, 촉탑을 드시면서 옛 추억에 좋아하시더라고요.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면 나이 먹은 여배우, 엘리자베스가 왕년의 인기를 잃고 에어로빅쇼를 진행하고 있어요. 그 일자리마저 잃을 위기에 낙담하여 운전을 하고 가던 중 차에 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거기서 어떤 매력적인 의사에게 젊어지는 물질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내 쓰레기 통에 버리는데요. 며칠 지나 퇴사를 통보받은 엘리자베스는 낙담합니다. 그리고 쓰레기통에서 버렸던 쪽지를 꺼내 비밀락커에서 물질을 픽업하여 급기야 자신에게 투약합니다. 그 후 고통 속에서 그녀 등이 찢어지면서 젊은 여자가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빠져나옵니다. 젊고 싱싱한 여자는 나이 먹은 여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쇼의 메인이 되면서 두 자아가 대립하는 내용이에요. 비주얼적인 충격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아트디렉팅이 좋아서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어요.
엘리자베스가 입고 입는 노란 코트는 다시 젊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 희망,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동시에 불안과 경고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젊은 여성, 수는 핑크색을 주로 입는데, 그 나이대의 여성에게 어울릴 수 있는 색으로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컬러이지요.
영화 초반부터 그 두 명은 하나라고 강조하는데, 두 여자의 욕망이 대립하면서 서로를 착취하고 학대하며 영화는 극으로 치닫게 됩니다. 마지막은 그야말로 피와 살이 튀기는 고어무비로 극도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보여줍니다.
영화를 본 후 예전에 보았던 '죽어야 사는 여자(1992년 개봉, Death becomes her)'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골디혼과 메릴스트립이 나왔던 영화인데, 비슷하게 그로테스크하고 줄거리도 유사한 영화였어요. 신비의 묘약을 먹고 젊어진 두 여자가 서로 질투하고 대립하는 내용이에요. 그 영화를 볼 때는 '젊음' '여성성'이란 단어들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이었는데요. 30년이 지나 보게 된 영화 '섭스턴스'는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는 내용이었어요. 젊음과 아름다움이 곧 권력인 현대사회에서, 여성으로 현명하게 나이 먹어 가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잊고 사는데요. 40대 이후부터는 노화와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도 잘 사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근래에 읽었던 유시민 작가님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할게요.
"인간은 이성과 더불어 욕망을 가진 충동적 존재이다. 욕망에 휩쓸리고 충동에 빠지면 때로 이성이 무력해진다. 여기에 무지가 겹치면 터무니없는 망상에 빠져 자기 손으로 삶을 파괴할 수 있다."
시국과도 잘 어울리는 문장이네요. 많은 분들의 피를 먹고 자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