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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여행

울룰루로부터의 대탈출

by 룰루띠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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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신성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사실 이십 대에 본 울룰루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고 웅장함에 압도되었었다면 나이가 들어 2019년에 다시 본 울룰루는 신성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울룰루 등반이 금지된다는 소식을 들은 현 남자친구는 기어코 등반을 해야겠다며 울룰루 여행을 계획합니다. 그래서 다시 찾은 울룰루는 눈물이 흐를 정도로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애버리진들이 왜 이 바위를 신성시했었는지 이해가 될 만큼 울룰루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특별한 곳인 거 같습니다. 이외에도 제가 신성함을 느꼈던 장소가 있었는데 그곳이 발리의 우붓이었습니다. 발리의 우붓에 도착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신성함이 느껴졌었는데, 비슷한 느낌을 울룰루에서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트렉킹 슈즈까지 준비해서 갔지만 전 오를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올라간 울룰루는 너무 가파르고 미끄러웠습니다. 어떤 건장한 남성들은 아이를 등에 지고 오르기도 했지만, 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라가면 두 발로 내려올 수 없을 거 같았기 때문에, 거기서 살던지 헬리콥터로 구조요청을 해야 할 거 같았습니다. 사실 저는 울룰루 등반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있는데 작고 아담한 체격으로 울룰루를 문제없이 등반할 수 있었다 해서 내심 저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슈퍼체력이었던 것입니다. 춥고 미끄럽고 가파른 것을 제일 싫어하는 저는 울룰루 밑자락에 앉아 남자친구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울룰루의 저주

울룰루 여행을 계획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울룰루에서 모래나 돌을 집어 집으로 가지고 온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거나 주변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비극이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서 사람들이 울면서 모래를 다시 울룰루로 보내온 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자기도 모래를 가져올 거라고 해서 제가 이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는 절대 미신이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 둘은 슈퍼고집쟁이들이기 때문에 그를 설득하는 일은 포기하도록 합니다. 아무튼 울룰루 꼭대기에서 모래를 채집한 남자친구는 내려오다가 다리를 크게 접질립니다. 여행 내내 불편하게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게 되었습니다. 남자의 자존심인지 모래를 계속 들고 다니던 그가 마지막 여행지인 킹스캐년에서 오는 길에 길바닥에 소중한 모래를 버려두고 오는 모습을 보고 폭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울룰루에 가셔도 절대 모래나 돌을 들고 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대탈출을 하다

다시 이십여년 전 얘기로 돌아왔습니다. 울룰루에서 다른 도시로 가는 모든 길이 홍수로 잠겼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제가 어디를 갈 때마다 비가 내리곤 했습니다. 자칭 타칭 비의 요정이었습니다. 다행인 건 나이가 들고 나서는 날씨의 요정으로 거듭나서 이제는 어디를 가건 날씨가 거의 좋아서 아주 행복합니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이 와중에 제 생일이 있어 사람들이 빵으로 생일케이크를 만들어 축하해 준 일입니다.  INTJ인 제가 좋아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언제 또 제가 제 생일에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겠습니까.

이틀정도 움막생활을 하다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무작정 공항에 가기로 했습니다. 육로가 막혔으니 날아서 탈출을 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엘리스 스프링스 - 애들레이드 구간은 차로 20시간이 넘는 지루한 구간이었지만 버스로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던 게 중간에 쿠버피디라는 도시에 꼭 들러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쿠버피디는 사막 한복판에 지어진 도시인데 마을 전체가 지하에 있다고 했습니다. 호주출신 영화배우 멜깁슨이 출연한 메드맥스의 촬영을 여기서 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쿠버피디는 포기해야 했고 무작정 공항에 갔습니다. 더는 지긋지긋한 비와 습기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영어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버스에서 잘 기회를 양보해 주었던 독일인 커플이 우리를 위해 애들레이드까지 가는 비행기표를 구해주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이래서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봅니다. 덕분에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뽀송뽀송한 애들레이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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