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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여행/퍼스

오래된 퍼스 이야기

by 룰루띠 202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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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환승을 거쳐서 처음으로 밟아 본 외국 땅 퍼스

어렸을 때부터 역마살이 심했던 나는 무작정 버스를 타고 내려 하염없이 걷다가 아는 곳을 만나거나 아는 버스가 지나가는 잡아타고 집에 오는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장점을 살려서 여행 유투버를 했으면 좋았으련만 하지 못했네요. 

김포공항에서 캐세이퍼시픽을 타고 홍콩으로 일단 날아갔습니다. 공항에서 얼마나 대기를 했을까 다시 비행기를 타고 퍼스로 갔습니다. 오랫동안 경유 편을 자주 이용했는데, 일단 싸고 덕분에 목적지 이외의 다른 나라도 구경할 수 있어서 선호했습니다. 이제는 직항이 좋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해외에서 첫발을 디딘 도시가 퍼스입니다. 두 달 전에 우연하게 다시 퍼스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퍼스는 참 먼 도시이기는 합니다. 호주에서 십여 년을 넘게 살면서도 겨우 한번 가보게 되었으니까요. 실제도 시드니에서도 5시간 정도 걸립니다. 서울에서 홍콩 가는 시간보다 시드니에서 퍼스 가는 시간이 더 걸립니다.

퍼스의 첫 느낌은 하늘이 참 높고 파랗다는 거였습니다. 마치 한국의 가을 하늘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시 안의 버스가 무려 무료라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퍼스가 속해있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에는 영국땅만 한 크기의 농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자가 많아서 세금을 많이 걷어 버스도 무료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사랑스러운 항구도시 프리멘틀

백패커스라고 불리는 유스호스텔 같은 숙소에 짐을 풀고 여기 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요새는 잘 안 그러지만 그때만 해도 왜 그렇게 박물관을 가는 게 좋았던지 모릅니다. 사실 별 관심도 없었으면서 여기저기 도시를 구경하고 박물관은 모조리 찾아가 방문해 주었습니다.

퍼스가 특별하게 다가왔던 건 퍼스 도시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퍼스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귀여운 항구도시 프리멘틀이 있고 거기서 좀 더 떨어진 곳에 로트네스트라는 섬이 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프리멘틀은 초기 정착민들이 세운 건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서 마치 미국 서부 총잡이들이 어디서 나타날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카푸치노 스트립이라는 곳은 그런 분위기가 더 진하게 남아있고 음식점들과 까페, 상점들이 몰려있는 곳입니다. 노천 카페들이 줄지어 서있어서 그때 당시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노천카페의 매력을 느끼며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4년 있다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그 후 거의 이십 년 만에 다시 방문했는데,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옛 기억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은 모습이 남아있어 참 기뻤습니다. 그 카페에 다시 가서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너무 늦게 방문하게 되어서 젤라또 가게에 들러 젤라또를 먹으며 옛날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방문하면서 새로 알게 된 것이 제가 좋아하는 맥주 리틀크리쳐스의 탄생지가 프리멘틀이라는 것입니다. 이십여 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아직 리틀크리쳐스가 탄생하기 전이었습니다.  프리멘틀에 있는 브루어리에 가면 맥주 테이스팅 메뉴를 즐길 수 있으니 프리멘틀에 가면 꼭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호주 전역을 여행하면서 브루어리 가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가서 즐기는 맥주도 맛있지만 대체적으로 제공하는 메뉴들이 맛있는 편이라 더 좋아합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던 로트네스트 아일랜드

이제는 쿼카로 굉장히 유명해진 로트네스트 아일랜드입니다. 제가 갈 때만 해도 그리 유명하진 않았습니다. 여행가이드북에 간단히 소개되어 있는 정도였습니다. 로스네스트 섬에 가기 위에 페리에 앉아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영어도 잘 못해서 제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더듬대는 정도였던 시절이었지요. 갑자기 승무원들이 소리를 지르길래 돌아보니 페리 옆으로 돌고래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 돌고래 무리를 만나는 경험은 자주 있는 편이지만 이렇게 선착장에 돌고래가 나타나다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페리를 타고 도착한 로트네스트 아일랜드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아마도 처음 해외여행이다 보니 눈에 한 꺼풀 필터가 착장 되었던 거 같습니다. 작년에 간 로트네스트 섬도 아름답긴 했지만 천국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트네스트 섬이 특별한 건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한국이었다면 벌써 삼십 년 전에 대형 호텔체인과 리조트들이 들어섰을 것입니다. 로트네스트에는 아직도 이층 이상의 건물이 없고 단층의 방갈로들과 백패커스, 야영장 등이 여행객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이십 년 전에는 커플티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섬을 일주했는데, 사람들이 어디서 왔냐, 커플티는 어디서 샀냐 많은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이후 제 인생에 다시 커플티는 없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너 영어 잘한다 해주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게 되면 정작 사람들이 너 영어 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도 자전거를 빌려 섬을 일주하였습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발랄한 쿼커들과는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고 소심한 쿼커들은 멀리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이전에 만났던 쿼카들의 후손들과 행복한 재회를 했습니다. 지금도 안 잊혀지는 아름다운 기억이 있습니다. 이십여 년 전 퍼스로 돌아오는 가장 늦은 시간의 페리를 탔는데 승객이 우리 커플, 남자 한 명 합이 세명뿐이었습니다. 승무원이 더 많은 상황이었지요. 뱃머리에 누워 깜깜한 밤하늘에 얼굴로 당장 쏟아질 거 같은 수많은 별을 바라보면서 여행자의 자유를 만끽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여행 히스토리에 있어 빠지지 않는 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십대의 첫 해외여행이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마 지금은 불가능할 겁니다. 유명하신 쿼카님들을 보러 오는 사람이 너무너무너무 많아졌으니까요.  다음은 비행기를 타고 태즈매니아로 날아갑니다.

쥐라고 오해받았던 쿼카, 실제로 온순하고 귀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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