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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인종차별 얘기

by 룰루띠 2024.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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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인종차별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면 당연히 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봤을 때는 '비교적 양호하다'가 중론이더라고요. 저는 한국과 호주에서만 살아봤기 때문에 다른 나라 상황은 잘 모르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에 살아봤던 친구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호주가 양호한 편이기는 합니다. 

호주를 두고 말씀드리자면, 인종차별은 대도시보다는 작은 도시나 교외 지역이 더 심합니다. 왜냐면 시드니 같은 대도시에는 외국인이나 이민자의 비율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민 후 줄곧 시드니에서 살고 있고 특히나 비교적 안전한 노스 쪽에 살고 있어서 인종차별을 크게 느낀 적은 없었는데요. 가끔 육로로 여행을 갈 때 시드니에서 두 시간 정도만 떨어진 동네를 가도 휴게소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저를 쳐다보는 경험을 합니다.  굳이 이런 상황을 인종차별이라 할 수는 없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고요. 이렇게 아시안이 드문 상황에서 인종차별이 일어나기 더 쉽다는 거죠.

또 도시에는 고학력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대학의 문화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많은 외국인들과 교류를 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기 마련이지요. 마음에 편견이 있다 해도 '배웠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을 일차적으로 들어내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들도 그것이 옳지 않은 행동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예전에 외진 길을 걷고 있다가 어떤 덩치 큰 남자에게 'Go back to your country!'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인종차별을 하기보다는 교묘한 방법을 씁니다. 예를 들자면 발음을 못 알아듣는 척을 하면 여러 번 말하게 한다던지, 서비스를 받으러 갔는데 인사를 하지 않는다거나 응대를 불성실하게 한다던지 해서 티가 안 나게 차별을 하죠. 이게 인종차별인지를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지요. 하지만 여러 번 당하다 보면 알게 되거나 아니면 이것이 인종차별이라고 믿게 됩니다.
 

 

시드니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골드코스트로 이주한 친구가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퀸즐랜드에는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아서 사람들이 좀 더 거칠다고요. 얼마 전 캔버라로 이주한 간호사 친구도 있는데요. 환자가 들어오면 아시안 간호사들은 아시안 간호사들끼리, 오지(호주인을 지칭하는 별명같은거에요)들은 오지들끼리만 서로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매니저는 오지가 아닌 다른 간호사들과 말도 잘 섞지 않는다고 해요. 호주에는 차별금지법이 있습니다. 시드니에 있는 회사들은 이런 이슈들에 대해 민감한 편인데요. 하지만 교묘하게 이루어지는 차별은 막을 방법은 없지요. 그리고 이걸 증명해 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같은 시드니 안에서도 상황이 좀 다릅니다. 제가 사는 노스의 경우 비교적 소득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편이에요. 하지만 시드니 서남부 쪽은 퍼블릭하게 인종차별을 겪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더라고요. 특히나 코비드 때에 이런 상황이 많이 발생했어요. 저 같은 경우 코비드 초기에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나갔었는데요. 호주 정부는 코로나 초기에 마스크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내놨었어요. 공급이 부족하기에 거짓 발표를 한 것이었어요. 사람들이 병원에 와서 마스크를 훔쳐가는 일이 발생하고 했었거든요. 하루는 마스크를 쓰고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는데 한 할머니가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위아래로 훑어보았어요. 무례한 행동에 저도 화가 났었거든요. 그랬더니 조용히 그냥 가시더라고요.

한편 제 친한 친구는 그랜빌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었어요. 시드니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생활수준이 비교적 낮은 곳이에요. 일 끝나고 집에 가는 기차 안이었대요. 기차 안 승객이 왜 마스크를 쓰냐며 제 친구를 큰소리로 공격을 하고 상당히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얘기가 퍼진 뒤 이때 아시안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중국인으로 취급하며 무례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이후 제 친구는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만큼 후유증을 겪었었고 제가 노스지역으로 이사를 오라고 설득했었습니다. 저는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런 무례한 사람을 기차에서 만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인종차별은 사실 언어차별인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해도 상대가 높은 수준의 영어를 잘 구사하면 인종차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랬다간 상대에게 역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민을 해서 산다는 게 참 녹록하지 않은 일입니다. 예전에 본 티비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굉장히 호주사회에서 명의로 소문난 중국인 외과의사가 있었어요. 그의 자식들은 모두 호주에서 태어났고요. 오스트레일리아 데이(호주 건국기념일)에 이 의사의 자식들이 시드니 유명 비치에 갔는데 사람들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해서 아이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의사가 인터뷰 하더라구요. 이제 다시는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에 아이들을 그 비치에 보내지 않겠다고요.

그럼 인종차별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제 경험을 비추어 팁을 드릴게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대응하기보다는 가능하시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힘들다면 조용하고 단호하게 "이런 표현이 차별적으로 느껴진다."라고 말해 상황을 인식시키시고요. 가능하면 사진, 녹음, 영상 등으로 증거를 확보하시고 주변에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우연히 정재승 작가의 ‘열두 발자국‘ 책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문구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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