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땅이 얼마나 넓은지 알지
애들레이드에서 멜번까지는 처음으로 장거리 버스여행에 도전합니다. 언제까지 비행기만 타고 다닐 수도 없고, 또 차를 렌트하자니 애들레이드로 다시 돌아올 계획이 없어서 멜번에서 반납을 하면 요금이 아주 비싸집니다. 멜번에 가면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경험하기 위해 차를 다시 렌트하기로 했기 때문에 애들레이드 - 멜번은 버스로 이동합니다. 약 746킬로미터, 9시간이 걸리는 먼 길입니다. 이게 또 버스로 가게 되면 운전사 아저씨의 건강과 안전운전을 위해 곳곳에 있는 휴게소에 정차를 해주어서 실제로는 열 시간이 넘게 걸리는 노선입니다. 또 하나, 이 휴게소라는 게 우리나라처럼 소떡소떡도 먹을 수 있고 제가 좋아하는 호두과자도 사 먹을 수 있는 그런 재미난 곳이 아닙니다. 그냥 주유소에 편의점 하나 붙어있는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보통 서비스 스테이션이라고 불리고 큰 곳은 물론 맥도날드(호주에선 Maccas[마카스]라고 부릅니다, s를 잊지 마세요), KFC 등등 패스트푸드 식당들도 있고 규모도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골라먹고 찾아먹는 재미는 전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튼 긴 여행에 바짝 긴장하고 버스에 올랐는데, 호주 사람들 장난 아닙니다. 베개를 갖고 버스를 탑니다. 이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 근데 버스에 타자마자 문제를 직감합니다. 우리 커플 앞에 엄마가 3살, 5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을 하나 봅니다. 근데 막내가 계속 징징거리고 울고 엄마는 끊임없이 "Stop it. That's enough!"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도 없던 그 시절에 저는 버스에서 지옥을 맛보았습니다.
그렇게 지옥 갔던 밤의 시간이 가고 동이 틀무렵 숙소가 있는 킹빅토리아 마켓 근처에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여기 유럽이야?
당시에 유럽은 안 가보았었지만 마치 사진에서 본 유럽의 도시를 연상케 하는 너무나도 멋진 도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멜번은 그 모습이 많이 퇴색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달러샵이라고 불리는 상점들이 시티에 전혀 없었습니다. 달러샵은 중국에서 들어온 싸구려 물건을 파는 잡화상 같은 곳으로 저도 이민 초기에 학교 다닐 때 싼 맛에 자주 애용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멜번의 아름다운 샌드스톤 건물 사이사이 자리한 달러샵들은 너무 흉물스럽습니다.
멜번은 공원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시티 네 귀퉁이에 공원이 있고요, 가운데에는 한강의 4/1 정도 폭의 야라강이 흐릅니다. 그래서 더 운치 있고 아름다워 보여서 그때는 한강도 좀 폭이 좁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멜번은 음식도 맛있고 특히 커피가 맛있기로 유명합니다. 이래저래 반할 수밖에 없는 도시인 멜번으로 가지 않고 시드니에 정착한 이유는 단지 하나, 일자리가 구하기 쉽다는 이유였습니다. 지금도 약간은 후회가 됩니다. 멜번이 훨씬 더 제 성향과 어울리는 도시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점들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단점이 멜번의 날씨입니다. 보통 하루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름에도 아주 더운 날 빼고는 반팔 없이 지날 수 있다고나 할까요. 전체적으로 시드니보다 춥고 날씨가 변덕스러운 날이 많고 비가 자주 옵니다. 남자친구의 출신이 멜번이라 자주 멜번을 방문하곤 하는데 늘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같은 이유로 남자친구로 멜번에서 시드니로 이사를 온 것이기도 합니다.
멜번은 시티도 큰 편이고 볼 때도 많아 시내관광에 적어도 3일은 잡는 편이 좋습니다. 멜번에 가면 제가 꼭 가는 곳은 물론 시티이고 그 외에 사우스야라, 투락, 프란마켓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우스야라에는 맛있는 식당, 카페, 멋진 옷가게가 줄지어 있습니다. 투락까지 거의 쭉 연결된다고 보시면 되고, 프란마켓은 재래시장 같은 곳으로 각종 과일과 야채, 꽃, 고기, 생선, 그리고 그리스, 터키, 이태리 등 각 나라 식재료와 음식을 파는 상점들이 입점해 있는 곳입니다. 멜번에 살게 된다면 프란마켓 옆에 살고 싶습니다.
렌터카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데
도시관광을 마치고 렌터카를 픽업합니다. 멜번에서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타고 워남불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합니다. 시간으로는 세 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은 구간이지만 해안도로라 길도 엄청 구불거리고 무엇보다도 볼게 많아 하루에는 다녀오기 힘든 구간입니다. 보통 하루투어를 가면 십이사도(Twelve Astropoles, 예수님의 제자들 바위)가 있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옵니다. 지금도 단체여행은 좋아하는 여행스타일이 아니라 꼭 렌트를 해서 돌아보기를 원했고 생각처럼 너무 좋았습니다. 젊음의 자유를 만끽했다고나 할까요? 물론 그 자유를 위해 많은 돈을 치러야 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좌측주행에 좀 익숙해진 전 남자친구가 과속을 하다가 사복경찰관한테 걸린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같은 속도로 따라붙더니 차를 갓길로 대라고 합니다. 차에서 내린 그 남자는 자신이 경찰관이라고 하면서 너무 빨리 달렸다고 합니다. 우리를 보더니 혹시 신혼여행 왔냐고 물어봅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벌금이 거의 오백불에 가까운데, 이걸 내고 나면 너의 신혼여행이 망가질 거다. 내가 한번 봐줄 테니 속도 지켜서 안전 운전하라고 하고 쿨하게 사라지십니다. 감사합니다 경찰관 나으리. 경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바로 구남친에게 잡아먹을듯 화를 냈습니다. 똑바로 하자. 다음 편에는 본격적인 그레이트 오션로드 여행이 시작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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