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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이민 이야기

이민자의 삶이란

by 룰루띠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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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즐거운 시드니 여행

시드니 시티 구경을 하고 페리를 타고 더블베이, 로즈베이, 왓슨베이를 구경합니다. 부자 동네일수록 옷가게, 인테리어가게가 많습니다. 시드니의 대표적인 부자동네는 모스만과 더블베이 등이 있지만 사실 하버뷰가 있는 동네, 비싼 사립고등학교가 있는 동네는 다 비싸다고 보면 됩니다. 모스만은 호주출신 영화배우 니콜키드먼이 동생에게 집을 선물했는데, 그 동네가 바로 모스만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더블베이는 하도 물가가 비싸 '더블 페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여행책자에 나와있었는데 호주인에게 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호주의 집들은 매우 개성이 강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면에서는 구조가 굉장히 비슷하여 실망인 경우도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보통 Ground floor, 우리나라로 말하면 1층에 거실, 주방이 있고 First floor, 우리로 하면 2층에 방을 몰아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방들이 붙어있고 방음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곤란하기도 합니다. 부자동네에 예쁜 집들은 보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물론 밖에서만 볼 수 있지만 말입니다.

블루마운틴도 다녀왔습니다. 투어비 좀 아끼자고 기차를 탔는데, 생고생을 한 경우입니다. 시드니의 경우, 주말에는 보통 트랙워크라고 해서 정비의 목적으로 운행이 버스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필이면 우리가 가는 날 그게 걸려서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고 고생해서 도착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블루마운틴은 코알라의 먹이인 유칼립투스 잎에 햇볕이 반사해서 공기에 파란빛을 띠어 산이 파랗게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 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경치 좋은 곳에 놀러 가니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참 신기하게 한국음식점도 있습니다. 특히, Leura(로라)라는 동네는 아지자기 예쁘고 귀여운 상점도 많아 특히 좋았습니다.

여름이니 또 비치에 들러줘야 합니다. 본다이 비치에 가서는 엄마가 지인을 만나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Manly(맨리, 남자답다?)는 처음에 이름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동네였습니다. 해변에 누워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속옷을 내리고 수영복을 그냥 갈아입으셔서 경악을 했던 나쁜 기억이 있습니다. 호주 남자들은 종종 이런 짓을 하는데 보시는 분들 운이 좋기를 바랍니다.

 

다시 공항으로

엄마와 보냈던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가 떠나는 날이 왔습니다. 엄마가 대성통곡하고 남아있는 맘이 안 좋아질 거 같아서 계속 경고를 했습니다. 다행히 엄마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출국장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분명 안에서 엄청 우셨을 겁니다. 

제가 울었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면 독해져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가니 이제 진짜 혼자입니다. 친구가 두 명 있지만 성격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같이 살 형편이 되지 않아 가끔 만나는 걸로 만족해야 할거 같습니다. 단기쉐어에서 일주일정도 혼자 더 머물고 있는데 이제 오래 머물 집으로 또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호주에는 '호주나라'라는 정보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모든 정보를 거의 이쪽에서 얻곤 하였습니다. 여기서 쉐어하우스 정보를 보고 집주인과 약속해서 집을 구경하고 결정을 하게 됩니다. 보통 디파짓을 걸고 입주날 잔금을 치릅니다. 디파짓은 나갈 때 훼손된 것이 없나 확인하고 돌려주는 돈입니다.

저는 다행히 친구가 소개한 지인의 친척집에 살기로 했습니다. 다녀야 할 학교와도 꽤 가까운 거리리고 동네도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해서 다녀옵니다. Chatswood라는 동네인데 이름이 예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밤나무골인가요? 그런 분위기를 기대했으나 실상은 매우 번화한 동네였습니다. 시티같이 모든 것이 있으나 시티의 복잡함은 좀 덜 한 느낌이 들어 아주 좋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십 년 가까이 그 동네에 살게 되고 아직도 자주 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민자의 삶

이민 후 십여년이 훌쩍 지나 바라보면 그때 어떻게 그렇게 힘든 일을 결정할 수 있었는지 사실 놀랍기만 합니다. 젊고 호기심이 가득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때의 삶에 대한 만족과 관련이 있겠다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삶의 스타일대로 살 수가 없었고 그에 대한 반발이 이민으로 이어진 거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살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살았어도 하루 8시간만 일했다면 대충 만족했을 거 갔습니다. 하지만 추가수당 없는 야근에, 바쁜 달은 자정이 넘어 끝나 버스가 끊겨 택시를 타고 퇴근을 했습니다. 한 달에 택시비가 30만 원이 나온 적도 있는데 회사는 이 금액을 지불해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직도 휴가를 갈 때 눈치가 보인다는 말이 종종 들리고 일주일 이상 휴가 가는 것이 일상적이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타향살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이가 된 것처럼 처음부터 삶의 방식을 새로 다시 배워야 했고 영어라는 높은 벽에 매일매일 좌절해야 했습니다. 아직도 영어로 말하다 말문이 막히곤 하니 처음에는 그걸 어떻게 버텼는지 놀랍습니다. 너무 힘든 날은 오후가 되면 영어가 더 안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뇌에 과부하가 걸리나 봅니다. 그래도 이렇게 시간이 흐르니 이렇게 과정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지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드니에서 두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블루마운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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