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폭을 당해본 적은 없다. 라떼는 학폭보다는 왕따 문제가 심각했던 시대였다. 중학교 때 일이다. Y는 얼굴도 예쁘고 날씬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문제는 MBTI의 I의 성격과 도도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이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어떤 친구에 의해 왕따가 시작되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었던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남녀공학이었지만 1반부터 3반은 여학생반, 4반부터 9반은 남학생반으로 구성된 우리 학교였다. 지금생각해도 참 이상하다. Y는 1반, 왕따를 시작한 아이는 3반 우리 반 아이였다. 1반부터 3반 여학생들 중 많은 수가 Y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이게 당연히 옳지 않은 일이라는 거, 그리고 그녀가 상처를 받을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딱히 나서서 막을 수는 없었다. 주동자에 반대하면 내가 대신 타깃이 될 거라는 불안과 비겁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굳이 나서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그리고 Y와 나는 다른 반이었기에 마음의 거리도 있었다. 그 당시 왕따라는 것은 멀리서 그녀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별명을 크게 부르며 깔깔거리며 웃거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에게는 충분히 속상하고 마음 아픈 일이었을 거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Y와 친구가 되었는데, 차마 중학교 때 그 심정이 어땠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근래 여자연예인 두 명이 학폭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오랫동안 조연으로 드라마에 출연했었고 최근 그녀의 연기를 보며 나도 감탄을 했었다. '와 정말 연기 실감 나게 잘하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걸 수도 있다 생각하니 매우 씁쓸했다.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받은 피해자들이 그녀의 연기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 상상히 가지 않는다.
학교폭력은 늘 사회적으로 큰 이슈이다. 공교육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속한 가정 내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근원적으로 우리의 '폭력'에 대한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가장 쉬운 예는 우리 사회의 '외모지적' 문제이다. 외모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적 성질로 개인의 의지로 변할 수가 없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사람의 외모에 대해 쉽게 말하고 평가한다. 의지로 변하지 않는 외모에 대한 지적은 당사자에게는 폭력이다.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사회구성원이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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