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으로 가기 전에
이민을 간다고 친구들을 다 만납니다. 가면 꼭 얼굴 보자고 미니 캠코더를 사서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합니다. 그러나 한 번도 쓰질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페이스타임, 카톡이 없던 시절이라 연락이 좀 힘들었습니다. 아주 비싼 국제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써야 했죠. 네, 십 년 이상 된 오래된 얘기입니다.
남대문에 가서 이민 가방을 샀습니다. 아직도 그런 가방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허리춤까지 오는 꽤 커다란 가방이었습니다.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미리미리 가방을 싸놓지 않은 저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 부랴부랴 밤새 가방을 쌉니다. 그 큰 이민가방을 채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딸내미를 혼자 호주로 이민 보내기가 걱정이 된 엄마가 따라나서십니다. 사실 유학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출발하기 한 달 전쯤에 쌍꺼풀 수술을 해서 눈이 아직도 조금 부어있습니다. 아빠가 공항까지 데려다주십니다. 울컥울컥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떠나고 중간에 방콕에서 며칠 보내다 가기로 했으므로 약간 설레는 맘이 들기도 합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내가 테어나 자란 땅을 떠난다고 생각야니 약간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서 방콕에 도착합니다.
어서 와 방콕 사기는 처음이지?
방콕 공항에 내려 호텔을 찾아갑니다. 투베드 레지던스인데 우리나라 30평대 아파트 크기에 깔끔하고 가격도 매우 쌉니다. 겨우 십만 원이 조금 넘었던 거 같습니다. 짐을 대충 풀고 밖으로 나옵니다. 뜨거운 공기가 코로 훅하고 들어옵니다. 일단은 방콕에 왔고 비행으로 인해 피곤한 상태이므로 마사지를 받으러 갑니다. 저녁을 먹고 첫째 날은 그렇게 정리합니다.
이튿날이 되었고 우리는 뚝뚝이로 여기저기 가보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어떻게 하면 사기를 안 당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똑똑이 기사가 오고 그가 목적지로 안내합니다. 중간에 잠깐 쉬어야겠다고 뚝뚝이를 세우더니 얘기를 시작합니다.
짧은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주고 받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자기 친구 딸도 호주로 유학을 갔는데, 태국 루비를 하나 사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시드니에 가서 웃돈을 얹어서 팔 수 있었고 그것으로 얼마간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보같이 순진한 엄마와 나는 그 뚝뚝이를 타고 루비 세공업체를 방문합니다. 넉넉하지만은 않은 유학자금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순한 생각을 한 모녀였습니다. 지배인이라는 사람이 나와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고 내일 자신들이 무료투어를 진행해 주겠다고 합니다. 현지인의 가이드를 받으면 좋을 거 같아 그러자고 하고 숙소에 돌아옵니다.
다음 날, 약속처럼 멀끔하게 생긴 청년이 호텔로 왔습니다. 그와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택시에 타서 어깨에 메고 있던 니콘 카메라를 좌석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그냥 택시에 내리고 밥니다. 택시가 거의 떠나는 순간 알아차린 저는 카메라를 두고 내렸다고 소리칩니다. 가이드 청년은 엄청 스피디하게 뛰어가 택시를 막아서고 제 카메라를 구해옵니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습니다. 그 카메라는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오래도록 몸에 지니던 것으로 그렇게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를 돌려주기 전 카메라를 들고 그가 물어봅니다. 이거 얼마정도 합니까? 이백만 원 정도 합니다. 그가 고맙지만 그의 의미심장한 웃음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투어가 끝나고 청년은 우리를 루비 세공장으로 다시 데려갑니다. 어제 만났던 지배인이 루비들을 다시 보여줍니다. 그제야 저는 깨닫습니다. 아 사기에 걸려들었구나. 일이천 불가량하는 반지를 권하며 사라고 합니다. 우리는 계속 싸고 작은 것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사실 이미 사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가이드의 인건비는 적어도 내야 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개미 눈물만한 루비반지를 하나 삽니다. 엄마가 사기당한 기념으로 저를 주십니다. 이게 왜 사귀냐 하면 그 반지를 시드니 와서 팔았을 때 당연히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반지는 이미 '사용한' 제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가이드가 카메라를 찾아주었으므로 가이드 비용을 방콕에서 아주 비싸게 낸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후에 저는 절대 다시 어떤 여행에서도 사기를 안 당 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뚝뚝이 드라이버의 어설픈 꾐에 넘어갔는지 아직도 참 의문입니다. 아마도 이민을 간다고 긴장한 탓이었나 봅니다. 다음편은 시드니에 도착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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