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넘어 호주로 이민을 했다. 호주로 이민하기는 순탄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번듯한 직장이력이 있어 이민을 한 것도 아니고 남자를 만나 파트너비자로 영주권을 받지도 않았다. 호주 회사를 다닐 때 만난 한국 여자분들을 보면 대부분이 파트너 비자로 영주권을 받은 걸 보고 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걸 알기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호주이민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영어점수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PTE라는 시험이 컴퓨터 베이스의 시험이 대세이지만 그때는 모두 IELTS를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아이엘츠는 네 가지 영역 -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로 구성되어 있다. 영어를 늘 학과목으로 공부한 여느 한국학생들과 같이 말하기가 정말 부담스럽고 힘이 들었다. 아이엘츠는 면접관과 대화를 나누는 게 말하기 평가이다. 사실 듣기도 문제였는데, 미국과 가까운 한국의 특성상 사실 다른 나라 영어발음을 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이엘츠는 외국에 나가 생활하고 공부하기에 필요한 영어를 평가하는 시험이라 세상 오만팔방 발음이 다 듣기 평가에 반영된다. 그래서 영국방송 BBC, 호주 방송 ABC를 보며 발음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호주방송 ABC 뉴스를 처음 볼 때는 충격이었다. 아나운서들의 발음이 너무 촌스럽게 느껴졌다. 미국영어는 A발음을 ‘에이’라고 발음을 하는데 호주에서는 ‘아이’로 발음을 한다. 호주식 인사(실생활에서는 거의 안 쓰임) G’day Mate! 를 ‘그다이 마이트’로 말하는 식이다. 또 단어들도 서로 살짝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엄마를 mom이라고 배웠지만 호주에서는 mum이라고 표기한다. 새우는 shirimp가 아닌 prawn이라고 부르고 tomato는 ‘토메이토’가 아니라 ‘토마:토’라고 읽는다. 왜 토마토를 토마토라고 부르냐고 했더니 그럼 너는 포테이토를 포타토라고 부르냐고 반문한다. 그냥 무조건 자기네가 옳다는 얘기다. 철자도 조금씩 틀리다. 미국은 organize라고 표기하지만 호주는 organise라고 쓴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넘게 지났다. 이제는 미국식 영어를 들으면 속이 느글거린다. 사람의 귀가 이리 간사하던가. 호주의 발음은 미국과 영국의 중간쯤이라고 하는데 비슷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r발음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햄버거를 햄버r거r라고 한다면 호주는 그냥 햄버거라고 한다. 블랙핑크의 로제, 뉴진스의 하니와 다니엘의 발음이 미국출신 아이돌들의 발음보다 조금 더 담백하다. 최근 대화형 쳇지피티에 ‘내가 어느 나라사람인 거 같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호주출신인 거 같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유창하게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발음이 그렇다는 뜻이다. 아직도 영어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다시 호주 어디 출신인 거 같냐고 물어보자 ‘시드니’인 거 같다고 대답해서 소름이 끼친 적이 있다. 촌스러운 호주발음 장착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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