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주여행

모터홈은 첨이야

by 룰루띠 2023. 3. 27.
반응형

캠핑의 추억

사실 난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돌아가신 울 아빠에게는 미군용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래서 의정부 고물상에 가서 미군들이 팔거나 버리고 간 물건들을 사가지고 와서 때 빼고 광내서 쓰거나 비싼 값에 팔곤 하셨다. 아니 아예 아빠 쪽 집안 피에 그런 게 있었다. 친할아버지는 집안 아무것도 못 버리게 하는 아주 고약한 고집이 있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둘째 고모가 아주 가끔 한 번씩 싹 다 갖다 버리고 할아버지에게 얻어맞곤 했다는 얘기를 엄마한테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 바로 밑 작은 아빠는 80년대에 이미 유럽을 다니며 좋게 말해 골동품, 나쁘게 말해 쓰레기를 한국에 수입해 들여왔었다. 물론 시기가 너무 일러서 비즈니스는 좋지 않았고 많은 물건이 우리집 창고에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걸 내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여름휴가를 갈 때면 아빠는 미군군복바지를 입고 미군모자를 쓰고(마치 군대 안 다녀온 사람처럼, 하사관 출신) 멋을 냈었다. 우리는 미군 천막을 치고 지금 봐도 이쁠 법한, 하지만 더럽게 무거운 미군 아이스박스에 얼음과 음료를 가득 채워 여름휴가를 떠나곤 했다. 지금은 좋은 추억이지만 그때는 사실 별로 감흥이 없었다. 아빠가 사 왔던 미군 누비여름이불은 아직도 하나 사고 싶다. 그 차가운 감촉과 온습도를 잘 조절해 주는 기능성 때문에 여름이면 그리워진다. 그리고 밖에서 자본 건 호주배낭여행을 하다 울루루에 갔을 때 일(울루루로부터의 대탈출 편 참조)이다. 사막에 홍수가 나서 도로가 다 끊기고 물이 흥건한 바닥 위에 천막을 치고 야상침대 위에서 며칠 동안이고 있어야 했다. 지금은 재밌는 추억이지만 그땐 정말 하늘이 미웠다.

우리 모터홈 사진을 못찾아 인터넷에서 찾은 가장 비슷한 모습의 모터홈

모터홈과의 첫만남

 호주 생활에 매우 익숙해지게 되었을 무렵 좀 색다른 일을 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키도 작고 내가 좋아하는 몸매가 좋은 남자가 아니었지만, 솔직하게 직진하는 모습에 빠져들었고 뭔가 잘못된 거 같다는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좀 늦어버린 상태였다. 사실 그때 돌아서야 했다고 백만 스물세 번쯤 생각해오고 있다. 어쨌든 그 남자는 이동오피스로 쓴다면서 집채만 한 모터홈을 구입했다.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캠핑카'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트럭 같은데 캠핑시설을 짜서 올리는 모터홈이 있다. 대체적으로 사이즈가 크고 보통 두 명에서 여섯 명까지 수용할 수가 있다. 두 번째는 캠퍼밴이다. 쉽게 말하면 봉고, 스타렉스 같은 벤의 내부를 개조해서 만든 캠핑카이다. 예상대로 크기는 모터홈보다 작고 내부도 좀 좁은 편이고 가격도 좀 싼 편이다. 세 번째는 캐러벤이다. 차에 매달고 다니다 정박지에 가서 펼치면 캠핑공간이 만들어지는 구조이다.

아무튼 우리의 첫 모터홈이 생겼다. 중고이고 연식이 오래되어 내부가 온통 패브릭으로 이루어져 차 안에 온통 쿰쿰한 냄새가 낫다. 패브리즈를 사서 여기저기 뿌려야 했다. 그래도 신기한 건 침대가 신식 전동이어서 잘 때는 아래로 내려서 사용하다 아침에는 천장으로 올려서 침대가 공간을 차지 않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 외에 생활에 필요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티브이, 냉장고, 전자레인지, 작은 옷장, 화장실, 샤워, 소파, 테이블 등등 불편함 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차를 인계받고 우리는 팜비치로 갔다. 수영을 하고 나와 따뜻하게 물을 데워 모터홈 안에서 샤워를 하니 내가 호주에 와서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 그 구닥다리 모터홈이 약 7천만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남자친구가 수동 오닝(awning, 차양)을 굳이 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익숙치 않으니 하지 말라고 말렸으나 고집대로 오닝을 폈다. 바람이 엄청 부는 언덕이었고 당연히 오닝이 부러져 긴급으로 사람을 불러야 했다. 욕이 나왔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여서 화는 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나와 모터홈의 첫 만남이었다. 지금 그는 캠퍼벤을 갖고 있다. 2020년에 우리 가족과 뉴질랜드에 갔을때는 6인용 모터홈을 빌려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했었고 같은해 울룰루에 갔을때는 캠퍼벤을 빌려 여행했었다. 앞으로 다른 캠핑카 경험도 소개할 예정이다. 

결론은, 지금 나는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텐트에서 자는 캠핑은 아니지만 캠퍼벤 캠핑은 아주 좋아한다. 이게 중독성이 있어서 고생인 줄 알면서도 계속 하고 싶은게 여느 캠핑과 마찬가지인거 같다. 캠핑카에서 자는 게 뭐가 고생인가 싶겠지만 영하 2-3도에 난방기구도 없이 오직 침낭과 뜨거운 물주머니를 의지해 자는게 고생이 아니면 뭐가 고생이겠는가. 또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여름에 애들레이드 갔을때는 오래된 모터홈의 에어컨이 거의 유명무실하여 얼음을 사서 비닐백에 넣어 머리에 이고 여행을 하기도 했었다. 쓰다보니 그걸 왜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는 2주 후 또 캠퍼벤 여행을 할 예정이다. 그때는 더 생생한 글을 쓸 수 있을 거 같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