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와 비옷을 입고 출발
어제 느지막이 12시에 출발해서 마운크 아난에 있는 보타닉 가든에 다녀왔다. 비가 간간이 왔고 20도 정도로 쌀쌀한 편이었다. 세금환급받은 걸로 큰맘 먹고 장만한 헌터 부츠와 작년 한국에 갔을 때 구입한 지오다노 레인코트를 처음 입을 수 있었다. 장화를 비싸게 주고 사고 싶지 않았으나 가벼운 걸 선호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작년에 한국 갔을 때 5만 원 정도 주고 산 장화는 너무 무거워서 반품해 버렸었다. 헌터를 사기로 마음먹고 매장에 가서 두어 번 신어보았다. 처음에는 발목과 무릎 중간까지 오는 플레이 톨 부츠를 사려했으나 168cm인 내 다리도 짧아 보여 어쩔 수 없이 롱을 샀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내가 기대한 만큼 가볍진 않지만 상당히 가벼운 편이고 무엇보다 이쁘다. 매장에서 고심하다가 정사이즈인 38을 샀는데 약간의 여유가 있게 잘 맞는다. 시드니는 이번 주 내내 비가 온다고 하는데 자주 신어줘야겠다.
가다가 중간에 캠벨타운에 들러 캠퍼벤 세차를 했다. 돈을 넣으면 금액만큼 시간이 주어지고 프로세스에 따라 세차를 하는 시스템이다. 정확히 남자친구를 5분 도와주다가 물 맞는 게 싫어 차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어차피 프로세스당 한 사람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거품 내는 차례에는 빗자루 하나에서만 거품이 나오므로 두 사람이 같이 일할 수 없다. 시간제인데 당연하지 않은가. 드라이브 스루 자동세차를 손으로 한다고 보면 된다. 자기 차 세차는 전혀 안 하는 사람이 왜 캠퍼 벤 세차는 열심히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차가 깨끗해지니 기분은 좋네.
마운트 아난 오스트레일리아 보태닉 가든
입장은 무료이다. 시드니 시티에서 운전해서 50분 정도 걸린다. 한국의 수목원과 비슷하지만 좀 더 뭐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냥 호주답게 그냥 뭐든 있는 그대로 놔두는 느낌이다. 나는 이런 호주의 스타일이 좋다. 그냥 자연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 그래서 월러비들 (캥거루 사촌)이 천지에 응가를 해놓아 곳곳이 지뢰밭이지만 그들도 당당한 이 땅의 주인이므로 우리가 그걸 불편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야생동물은 볼 수 없었다. 대개 호주의 동물들이 야행성이라 해가 질 때쯤 되어야 모습을 나타내고는 한다. 도착하니 부슬비가 흩뿌리고 있었고 야외에선 결혼식이 진행 중이었다. 아마도 아프리카 출신 사람의 결혼식인 듯 보였다. 화려하게 의상을 차려입은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아줌마 같이,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는 말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그거 다 위로의 말이잖아.
조금 걷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쉼터 같은 곳에 앉아 싸가지고 간 피자와 과일을 점심으로 먹었다. 꽤 큰 지붕아래 테이블이 한 열다섯개는되어보이는데 우리 커플과 남자 한 명 딱 셋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은 피자를 맛있게 먹었다. 먹고 있으니 노이지 마이너라고 불리는 새 세 마리가 삥을 뜯으러 왔다. 야생동물에게 절대 먹이를 주어선 안된다. 왜냐면 그들이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법을 잊어버릴 수 있고 만약 사람이 계속 먹이를 주다 보면 나중에는 사람들을 공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다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길.
스트라스필드에 들러 저녁식사
늦게 출발한데다 컨디션도 안 좋고 장화도 신고 있어서 많이 걸을 수 없었다. 이 보타닉 가든이 좋은 게 차를 가지고 돌아볼 수 있다. 보틀브러시 가든, 와틀가든, 뱅시아 가든 등을 둘러본 후 플라워 파워 가든 센터에 들렀다. 보통 너저리 (nursery)라고 하는데 화초를 파는 곳이다. 최근 라벤더 화분을 하나 샀는데,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다. 많이 속이 상해 좀 더 강해 보이고 요리에도 쓸 수 있는 로즈마리를 사고 싶었다. 한 바퀴 둘러본 후 흔들의자에 앉아 좀 노닥거리다가 로즈마리 화분을 $11에 사서 나왔다.
맛있는 탕수육이 먹고 싶어 스트라스필드에 가기로 맘을 먹었다. 딱히 집에 가는 길은 아니었지만 남자친구를 꼬셔서 스트라스필드에 있는 빨간고추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차가 좀 막혔다. 이렇게 돌아가는 건 내 인생 처음이라고 꿍시렁꿍시렁 거리던 인간이 도착하자마자 맥주를 한잔 마시고 여기가 맘에 든단다. 아우 이 인간을 어쩌지. 호주에는 한국재향군인회 같은 단체가 있고 거기에서 동네마다 RSL클럽을 운영한다. 보통 술, 음식, 포키머신 (빠찡고) 등을 제공하는데 대체적으로 음식도 괜찮고 가격도 좋은 편이다. 잘은 모르지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빨간고추라는 식당이 스트라스필드 스포츠 클럽 안에 들어와 식당권을 사서 운영하는 듯 보인다. 아무튼 여기 음식이 시드니에서 내 입맛에 가장 맛있다. 생각 같아선 아구찜과 탕수육을 시키고 싶지만 돈 내고 남친 잔소리 (음식 남기는 거 싫어함)가 듣기 싫어 쭈꾸미 볶음과 탕수육을 시켰다. 이 조합 성공일세. 탕수육이 1/3 가량 남아 싸가지고 왔다. 아껴야 잘 산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열흘간 휴가이다. 이렇게 휴가를 자주가도 되나 싶게 휴가를 자주 가서 좋기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 나중에 뭐 먹고살래.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젊지도 않은데 놀기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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